베트남 북부 푸토성(Phú Thọ) 비엣찌시(Việt Trì)에서 차로 10분 남짓 달리면, 로강(Sông Lô)을 따라 오래된 마을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 이름은 흥로(Hùng Lô), 관광 안내서에 자주 등장하는 곳은 아니지만 이 마을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쌀국수의 고향’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조용한 마을의 쌀국수가 국경을 넘어 일본 식탁까지 오르고 있다.

길 위에 널려 있던 쌀국수
흥로 마을의 국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다. 공장도, 대기업도 없던 시절. 마을 어르신들은 “예전에는 집집마다 국수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새벽에 쌀을 불리고, 갈고, 반죽해 면을 뽑아내면 대나무 틀에 올려 햇볕에 말렸다. 마을 길을 따라 하얀 국수 면이 끝없이 이어졌고, 바람에 흔들리는 면발이 곧 이 마을의 풍경이었다.
국수를 실은 손수레가 오갔고, 이웃끼리 면을 나눴다. 많이 만들면 많이 팔고, 적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흥로 사람들에게 국수는 ‘상품’이기 이전에 생활 그 자체였다.
맛을 만든 건 비옥한 토지
흥로 쌀국수가 유난히 부드럽고 잘 끊어지지 않는 이유를 사람들은 땅에서 찾는다. 로강이 오랜 세월 쌓아온 충적토 덕분에 이 지역의 쌀은 알이 단단하고 단맛이 난다. 이 쌀로 만든 면은 삶아도 흐물거리지 않고, 국물에 오래 담가 두어도 형태를 유지한다.
첨가물을 쓰지 않는 것도 오래된 관습이다. 예전에는 선택지가 없었고,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쌀과 물, 그리고 손이 만들어낸 결과가 이미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흥로 쌀국수는 희고 냄새가 없으며, 씹을 때 미묘한 탄력이 남는다. 베트남에서 설날(Tết)에 닭고기 국수에 이 면을 쓰는 집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라질 뻔한 전통
하지만 이 전통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흥로의 국수는 ‘잘 팔리지 않는 지역 음식’에 가까웠다. 생산은 모두 수작업이었고, 품질은 들쭉날쭉했다. 판로도 마땅치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하나둘 마을을 떠났다.
2004년, 흥로 국수 마을은 전통 공예 마을로 지정됐다. 명예는 생겼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16년에 찾아왔다. 몇몇 주민이 뜻을 모아 ‘흥로 쌀국수 협동조합(HTX Phở Hùng Lô)’을 만들었다. 처음 조합원은 9명, 월 생산량은 10톤이 채 되지 않았다.

‘국수’를 ‘산업’으로
협동조합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이후 공동 자금을 모아 기계를 들였다. 면 뽑기, 건조, 절단 공정이 하나둘 자동화됐다. 생산량이 늘었고, 무엇보다 면의 굵기와 질감이 일정해졌다.
식품 안전 기준도 정리했다. 작업 공간을 구분하고, 원료 관리 기준을 마련했다. 브랜드 로고를 만들고 단체 상표 등록 절차에 들어갔다. 포장지에 마을 이름과 로고를 넣은 것도 이때부터다. 소비자가 ‘어디에서 만든 국수인지’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숫자가 말하는 변화
변화는 빠르게 나타났다. 월 생산량은 60톤 수준까지 늘었고, 조합은 35명의 상근 인력을 고용했다. 이들 대부분은 마을 주민이다. 월 평균 소득은 600만~650만 동(VND) 수준으로 안정됐다.
흥로 쌀국수는 비엣찌시를 넘어 전국 40여 개 성·시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각종 농산물 박람회에 초청됐고, 선물용 세트 상품도 나왔다. “마을에서 태어난 깨끗한 쌀국수”라는 문구는 이 브랜드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
일본으로 간 쌀국수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일본 수출이다. 까다로운 기준을 맞추기 위해 생산 공정과 포장을 다시 손봤다. 그렇게 만들어진 흥로 쌀국수는 일본 시장에 정식으로 들어갔다. 이후 대만 등 다른 지역으로도 길을 넓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협동조합은 푸토성 내 다른 농업 협동조합과 손을 잡았다. VietGAP 기준으로 재배한 쌀을 계약 방식으로 공급받아 원료 품질을 안정시켰다. 쌀값도 시세보다 높게 책정해 농가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마을이 브랜드가 되다
지금의 흥로 쌀국수는 단순한 식품이 아니다. 이 국수에는 마을의 이름이 붙고, 사람들의 얼굴이 겹친다. 협동조합 이사회는 생산 계획부터 브랜드 방향까지 함께 결정한다. 전통 방식은 남기되 비효율은 줄인다. 이 균형이 흥로 쌀국수의 핵심이다.
흥로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은 국수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고, 면을 자르고 말리는 체험을 한다. 국수 한 그릇을 먹는 일은 이제 ‘음식 소비’가 아니라 ‘마을을 이해하는 경험’이 됐다.
한 가닥의 면에 담긴 선택
흥로 쌀국수의 성공은 기적이 아니다. 사라질 뻔한 전통을 붙잡고, 느리지만 방향을 분명히 정한 결과다. 값싼 대량 생산 대신 이름을 걸 수 있는 품질을 택했다. 그 선택이 마을을 살렸고, 국수를 세계로 보냈다.
지금도 흥로에서는 매일 국수가 만들어진다. 예전처럼 길에 널어 말리지는 않지만, 쌀을 불리고 면을 뽑는 손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 손길 위에 ‘브랜드’라는 이름이 얹혔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이제 흥로를 벗어나고 있다.

OCOP 인증 쌀국수 제품라인
흥로 쌀국수 협동조합의 제품 경쟁력은 국가 인증 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협동조합의 주요 제품들은 베트남 정부가 운영하는 OCOP(One Commune One Product) 프로그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표 제품인 ‘흥로마을 청정 쌀국수(Mì gạo sạch sinh ra từ làng Hùng Lô)’는 OCOP 5성 인증을 획득했다. 이 쌀국수는 흥로 지역에서 재배한 쌀만 사용하며 첨가물 없이 만들어 삶아도 면이 쉽게 퍼지지 않는다. 국물과 오래 어울려도 쫄깃한 식감이 유지되어 가정용뿐 아니라 식당용으로도 활용도가 높다.
이와 함께 ‘흥로 특선 쌀국수(Mì gạo Hùng Lô loại đặc biệt)’와 흥로 특선 포국수(Mì phở Hùng Lô loại đặc biệt)’는 OCOP 4성 인증 제품이다. 일반 쌀국수보다 면의 밀도를 높여 쫄깃함을 살렸고 고기 육수는 물론 닭고기, 해산물 육수와도 잘 어울리도록 개발되었다.
특히 일본 수출 물량도 이 라인업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협동조합은 이 외에도 채소 국수, 수박 국수 등 색감과 원료를 차별화한 제품을 선보이며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히고 있다. 모든 제품은 원산지가 명확한 쌀, 체계적인 생산 관리, 그리고 마을 이름을 걸 수 있는 품질이라는 동일한 원칙을 지켜 생산된다.
OCOP 인증은 단순한 등급이 아니라, 흥로 쌀국수가 전통 음식을 기반으로 지역을 넘어 국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뢰의 증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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